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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짧은 글

플라톤 국가의 트라시마코스를 위한 변명

트라시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논의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한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가 이상적인 통치자의 개념을 설정하여 실수가 없는 상황을 가정하자 엄밀한 의미의 통치자는 자신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정의는 기술의 일종으로 가정한다. 단, 정의는 의술이나 항해술 등과 다른 차원의 기술이라고 한다.


트라시마코스: 허나 양을 치는 기술을 생각해보시오. 양을 치는 양치기는 양의 이득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오? 그다지도 자애로울 수가! 무지자를 자처하는 당신이라도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오. 양을 치는 양치기는 자신의 기술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오. 그는 양을 돌보는 항시 결국 양을 팔아 돈을 벌 날 하늘에 걸려 있을 무지개를 생각하고 있거나 친구들을 초대하여 양고기로 만든 요리를 접대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조그마한 자신의 집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란 말이오.


소크라테스: 정말 그렇게 생각하오? 양치기의 양을 치는 기술 자체를 생각해보면, 그는 항시 자신의 양을 혹시 모를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으며, 그들이 적절한 때에 풀을 뜯어 배를 불릴 수 있도록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단 말이오. 이것이 어찌 양을 위함이 아니겠소?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이득을 도모한다는 것은 양을 치는 행위와는 별도의 것이오. 양을 치는 기술 자체는 자신의 이득이 아니라 타인, 즉 양의 이득을 위한 것이기에 그는 별도로 보수를 획득하는 기술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오.


트라시마코스: 오호라, 당신은 기술자들이 갖고 있는 각 분야의 기술과 별도의 기술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군?


소크라테스: 그러하네. 나는 이를 보수 획득술이라 부르고자 하네만.


트라시마코스: 그렇다면 보수 획득술은 왜 사용하는 것이란 말이오?


소크라테스: 그것은 보통의 기술이 온전히 돌보는 대상에게 최선의 것을 제공하는 일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란 말이네. 따라서 기술자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보수 획득술을 덧붙이는 것이지. 그리고 통치술 역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제공하지 않기에 아무도 자진해서 통치를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혹은 그에 대한 보수를 요구하는 것일세.


트라시마코스: 허허, 나는 당신을 위선자라 부르고 싶소. 먼저, 양을 치는 기술이 온전히 양만을 위한 것이라면 보수 획득술은 온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오?


소크라테스: 그렇네.


트라시마코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보수 획득술을 사용해야 하는 만큼 빠듯하게 사는 사람이 어찌 보수 획득술만을 사용하지 않고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여 남을 돕는 기술까지 발휘한단 말이오?


소크라테스: 보수 획득술만을 사용하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겠소?


트라시마코스: 그렇다면 일반적인 기술은 기술의 대상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것만이 아니라 그 기술을 구사하는 이에게 사회적 명예나 명성을 가져다준다는 말이오? 그것은 아닌 것 같소, 당신의 논리에 따른다면 의술을 발휘하여 사회적 명예를 얻는 이는 의술로 환자에게 이익을 주는 동시에 명예 획득술이라는 별도의 기술을 덧붙여서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온 것이겠지 의술이 명예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보수 획득술은 별도로 구사할 수는 없는 기술이라 보면 어떠한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일세.


트라시마코스: 내가 그리 하여 당신을 위선자라 하겠다는 말이오. 반드시 다른 대상과 함께 존재해야 하는 기술을 억지로 분리하여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는 남아있는 기술에 대한 정의로 나를 몰아세우는 것이 합당하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주장하겠소. 당신이 말한 것처럼 양을 치는 기술이 보수 획득술과 다르다고 보세. 그렇다면 나는 양을 치는 기술에서 양에게 이득을 주는 부분을 분리해내겠네. 예컨대 양 먹이 제공술과 양 보호술, 이들을 양 치는 기술에서 떼어내고 나면 양치기에게 남는 것은 그저 나무 막대를 휘적이는 행위일 뿐이고 결국 양 치는 기술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한 가지 동작에 불과한 것이네.


소크라테스: …


트라시마코스: 의문이 드는 지점이 조금 더 있네. 정의, 혹은 통치술은 당신이 정의한 바, 기술의 대상에 대해서만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당신은 누구도 자처하여 통치자가 되고자 하지 않는다고 하였소. 그러나 이리 생각해보면 어떠하오? 타고난 통치자가 아니라 자처하여 통치자가 된 이라면 그는 본디 시민의 일원이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자처하여 통치자가 된 후라 하더라도 변하지 않소. 즉, 그가 자처하여 통치자가 된 후에 통치술을 편다면 그는 동시에 기술을 사용하는 자이면서 기술의 대상이 되는 자가 된다는 말이오. 기술이 기술의 대상에 이익을 주는 것을 도모한다면, 그는 시민들의 이익에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통치술만으로도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소. 이 경우에도 통치를 하는 이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없기에 별도로 보수 획득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