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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짧은 글

영화 부당거래와 행정공화국

대한민국은 행정공화국이다.


국가는 민간의 영역과 정부가 행사하는 공권력의 상호 영향에 의해 움직인다. 물론, 더 넓게 보면 해외의 자본이나 외국과의 관계 역시 한 국가의 상태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드는 생각이 대한민국에서는 정부의 권한이 크다는 것이다. 아니, 정부라는 말로 대표 되는 행정부의 힘이 지나치게 비대한 전형적인 관료주의 국가가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부당거래에서도 그런 대한민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지난 과제에서 수긍이 가는 점으로 지적하기도 했지만, 주양이 부하 직원에게 명령을 내리자 직원이 냉큼 통화 기록을 조회해 갖고와 주양이 그를 토대로 최철구와 장석구 사이의 관계에 의심을 하게 된 것이 바로 문제의 장면이다. 검찰로 대표되는 행정 권력은 극도로 민감한, 프라이버시라는 개인의 영역에 마음대로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범죄의 근거가 뒷받침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논란이 될 상황인데, 하물며 주양은 최철기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더하여 ‘더 뒤지면 뭔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통화 기록을 뒤진 것이다. 이는 실제로 최철기가 잘못한 점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이전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검찰은 개인 정보 조회를 위해 영장을 받아야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뿐이며, 정부의 신원 조회 요구에 대해 인터넷 기업이나 통신 기업이 갖고 있는 힘은 허울만 있는 껍데기일 뿐이다.


부당거래에서 행정 권력은 경찰과 검찰에 의해 묘사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수사나 검거의 영역이 아닌 일반 행정의 영역에서도 행정 권력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사법과 입법의 기능이 약하다는 대륙법의 특성을 여실히 증명이라도 하듯이 행정부의 입법 기능이 남용되고 있다.

방통위 측은 관련 업계의 의견 등을 충분히 수렴하고 이를 완성해 7~8월 중으로 이를 입법 예고한다는 방침이다. (디지털데일리, 2012년 6월 24일, ‘클라우드 법 제정된다)

위와 같은 문장들은 평소에 별 문제 없이 받아들였을 수 있으나 모두 행정 기관의 입법 실태를 보여준다. 실제로 ‘한국에서의 입법의 기능과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였던 최송화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 법은 누가 만드는가. … 네번째 응답은 ‘행정’이라고 하고 있다. 현대적 국가기능의 변화에 따라 행정이 입법적기능과 사법적기능을 아울러 행사하게 된 행정혁명에 의하여 행정이 입법자의 하나로서 나타났는데 그 기능면에서 의회를 압도하기에 이르고 있다. 즉, 행정입법시대라고 하겠다. (최송화, ‘한국의 입법기구와 입법자’)

정부 기구의 자위 입법과 복잡하고 임의적인 시행령에 더해, 행정의 불투명성은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앞서 인용된 기사에 사용된 용어를 빌리자면 방통위가 ‘관련 업계의 의견 등을 충분히 수렴’하는데 어떻게 누구의 의견을 수렴했는지 공식적인 보도 자료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알라딘과 오픈넷의 ActiveX-free 결제 방식 도입 과정에서 금감원이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던 것처럼 행정 관료는 새로운 기술의 시장 진입에 대한 비겁한 술책을 펴기도 한다. 관민 협조가 민관 유착이 되는 것 또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행정부의 입법 기능 강화는 사실 ‘나랏님’이 일을 도맡아 해결해주길 바라는 국민성과 맥을 같이 한다. 정부의 기능에 대한 신뢰 및 의지는 과거의 경제 개발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 경제 상황에서 과거의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2013년 5월에 다음과 같은 보도가 있었다.

미래부, 청년구직자 모바일, HTML5 실무교육 … 6개월간 현장 교육을 받고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뉴스1, 2013년 5월 14일)

그런데 어쩐지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과거에도 있었다.

IT전문가, 학원에서 6개월 배우면 취업가능 (매일경제, 2001년 5월 22일)

정부 “올해 IT인력 11만명 양성키로” (머니투데이, 2001년 4월 7일)

그리고 다음 기사를 보면 더욱 기가 찬다.

6개월 교육후 일자리 알선 … 30여직종 136기관서 실시 … 서울시내의 한 직업훈련원에서 컴퓨터교육을 받으며 재취업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실직근로자들 (동아일보, 1990년 7월 21일)

국민들이 바랐고 정부가 적극 추진해서 꾸준히 양성된 ‘6개월 만에 취직이 가능’한 ‘11만의 IT인력’은 1990년 이후로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취업난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가?


애초에 현대의 경제 구조는 정해진 결과물을 성취하는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방향성이 단순 명료하고 예측 가능했던 경제 개발 시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뜻이다. 눈에 보이는 자원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적절히 분배하는 단계에서 진일보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자원을 찾아낼 수 있게 하려면 타게팅(목표 설정)이 아니라 플랫폼을 마련해주는 것(기초 공사)으로 방향을 완전히 돌려야 한다.


정부 프로젝트에는 실패가 없다. 세금을 사용하여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만큼 실패에는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끊임 없는 명분 제공과 동기 부여로 연명하는 정부 프로젝트는 국가의 자원을 낭비할 뿐이다. 혁신은 실패를 인정할 때 가능한 것이다. 정부 관료가 가시적 성과와 업적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성공과 실패, 그리고 혁신은 모두 국민의 것이 되며 경제는 스스로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름의 전공을 살려 행정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기업의 재무상태표에 빗대 상대적으로 표현해 보았다. 국가라는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은 국민이기에 차변을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또한, 정부란 국민에게서 권력과 경제력 등을 빌려와 만든 것이기에 부채로 보았고, 정부 외의 영역인 기업은 국민이 자생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영역으로 보아 자본에 비유했다. 물론, 여기서 언급한 기업이라는 말에는 자영업 등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의 경제 주체가 포함되는데, 전체 사안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부의 힘이 기업을 움직이는 데까지 작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에서 부채 계정의 크기가 자본보다 크게 설정되었으며, 정부의 영역에서 행정부의 값이 큰 것은 앞서 서술한 내용을 반영한다. 자본의 영역에는 대기업에 의해 점령된 것에 가까운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대한민국의 재무상태표>

자산 100

  • 국민 90

  • 기타(국토 및 자원) 10

부채 55

  • 정부 55

    • 행정 35

    • 사법 10

    • 입법 10


자본 45

  • 기업 45

    • 대기업 30

    • 중소기업 10

    • 기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