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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긴 글

'The Social Network'와 대학생 창업

             2010년 말에 개봉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는 미국의 유명 SNS인 페이스북의 창립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법률적 다툼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하버드의 컴퓨터 천재였던 마크 주커버그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 앙심을 품는다. 그리고 그는 하버드 기숙사의 여학생들 정보를 모두 끌어 모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외모 순위를 매기게 하는 사이트를 만들게 되고, 이 사건으로 비밀 엘리트 클럽인 포셀리언 클럽의 윙클보스 쌍둥이에게 연락을 받게 된다. 그들에게 하버드 학생들만의 네트워크 사이트인 하버드 커넥션의 제작 의뢰를 받은 주커버그는 이를 수락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주커버그는 기숙사로 돌아와 친구인 에두아르도 세버린과 함께 ‘더 페이스북’이라는 네트워크 사이트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 나중에는 '냅스터'[각주:1]의 공동 창업자였던 숀 파커까지 팀에 가세하여 '페이스북'[각주:2]을 성공으로 이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도용당했다고 주장하는 윙클보스 쌍둥이와 불공정한 계약 과정에서 경영권을 빼앗기고 회사에서 쫓겨난 세버린이 각각 주커버그와 페이스북에 소송을 걸게 되고, 이 역시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어진다.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부분이나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많다. 하버드 학생들 사이의 비밀 사교 클럽들 이야기나 젊은 나이에 스타 경영인이 된 프로그래머 주커버그의 성공담 자체는 물론, 세버린의 경우와 같이 창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동료에 대한 철저한 배신이나 IT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흔히 논쟁을 낳는 아이디어 도용에 관한 내용들이 그 예이다. 그러나 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대학생 창업과 관련된 부분이다. 대학생인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자마자 직접 간단한 사이트를 만들고, 경영을 전공하는 있는 친구인 세버린과 함께 회사를 세운다. 그리고 투자자를 찾아 사업의 규모를 키웠고, 현재는 세계를 주름잡는 SNS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주커버그를 초대하여 하버드 네트워크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던 윙클보스 쌍둥이 역시 인터넷 기반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또한, 파커와 함께 영화 내용에 간간히 등장하였던 냅스터 역시 숀 패닝이 고등학교 시절에 삼촌이 컴퓨터를 사준 것을 계기로 하여 대학을 다니던 도중에 만든 서비스였고, 이 역시 거대한 회사로 성장하였다.[각주:3] 영화 속에도 등장한 이런 예들과 같이 실제로 미국에서는 대학생의 창업이 드문 일이 아니며, 이를 위한 인프라도 상당히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뉴스위크’와 ‘와이어드’ 등에서 수석 필진을 맡기도 하였던 저널리스트 스티븐 레비는 구글에 대해 쓴 자신의 책에서 "똑똑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창업을 하는 미국에서, 이토록 영리한 사람들을 4000명 넘게 고용하여 모아놓은 것은 매우 놀랍다."고 하였다.[각주:4] 이는 구글의 인재들을 찬양하는 문장이었지만, 내게는 이것이 오히려 우수한 미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창업에 적극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문장으로 다가왔다. 창업자를 돈방석에 앉히고 엄청난 양의 외화를 미국으로 벌어오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의 수많은 IT 기업들의 창업자는 모두 대학생이었고, 그들 중 일부는 회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대학을 중퇴하기까지도 하였다. 물론, 미국의 경우에는 운 좋게 우수한 이들만 창업에 뛰어들었으며, 인구가 많으니 그만큼 성공한 사례도 많고, 같은 상품을 만들어도 잠재 사용자가 많으니 회사가 빨리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고영하 엔젤투자협회장의 발언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들의 70%가 창업을 꿈꾸는 반면에, 한국은 55만명 중에서 60%에 달하는 30만명이 공무원 시험 교재를 찾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각주:5] 즉, 영화 속 주인공의 주변에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던 것도 아니고, 극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연출이라고 의심하기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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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대학생 창업이 중요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제 경제를 주름잡는 것들은 물론 대기업들이다. 대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단가를 낮출 수 있지만, 동시에 시장의 변화에 재빠르게 움직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의 시장, 특히 IT의 영역에서는 시장의 흐름 변화에 따라 아무리 강력했던 기업이라도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대기업에 크게 의존하며 중소기업이 빈약한 산업 구조의 국가는 해당 기업들이 시장에서 도태되었을 때 국민 경제에 어떤 불안이 초래될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의 대기업들을 내세우며 승승장구하던 일본 경제도 이들의 몰락과 함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침체에 들어서고 있다. 그나마 한국에 비해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가 적다는 일본의 경우에도 이러한데, 만약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과연 한국 경제를 도맡을 다른 대기업이 나타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룡 기업이라도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지만, 그 자리를 채우고자 기회를 노리는 수많은 새끼 공룡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벤처 기업들이고, 현실성을 가진 참신한 아이디어는 대기업 10년차 사원들이 아닌 대학생 창업자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작은 기업이 갖는 이점은 영화 속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과연 어떤 대기업이 주커버그가 했던 것처럼 심심풀이로 하버드 기숙사의 학생들로 구성된 데이터베이스로 네트워크 서비스를 만들 수 있으며, 거대한 회의도 없이 회사의 이름에서 ‘The’를 빼는 조치를 시행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서로의 연애 상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바로 그 날 해당 기능을 서비스에 추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생 창업을 돕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 번째는 교육의 변화이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이미 초등학생 시절부터 도전과 모험 등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하였다.[각주:6] 실제로, 애리조나 대학 비즈니스스쿨이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기업가 정신 교육을 받은 졸업자의 27%가 실제 창업에 뛰어든 반면, 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 창업자 비율은 9%에 불과했다.[각주:7]

             또한, 실패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갖추어져야 한다. 이는 흔히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위험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를 북돋워주는 말 한 마디가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분위기일 것이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는 한 방송에서 실리콘밸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닌 실패의 요람이라고 언급하였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는 100개 기업 중에서 한 곳 정도만 살아남는다. 하지만 실패한 99개 기업에게도 성공할 때까지 기회를 주는 것이 실리콘밸리이며 그렇게 성공의 발판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이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인터넷 여론은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대학 중퇴생이 한국 사회에서 세계적인 IT 기업은 고사하고 변변치 않은 중소기업이라도 설립해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낸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는 대기업에서 해고라도 당하면 실업 급여나 조금 받고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사람처럼 되고, 기업을 하다가 실패하면 사장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신용불량자의 멍에를 쓰고 사회의 최하층으로 전락한다. 비영리 안드로이드 개발 팀의 우두머리였다가 삼성전자로 스카우트된 스티브 콘딕이 2년이 지난 지난 3월 스스로 회사를 박차고 나와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따분한 대학 교수 자리를 때려치우고 1999년에 신생 기업 구글에 입사한 우어즈 홀즐 등의 사례는 한국에 흔치 않다.

             대학생들이 창업을 하기 위한 자금을 얻는 수단도 확보되어야 한다.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신생 기업의 아이디어만을 보고 그 미래에 거금을 선뜻 투자할 수 있는 대인배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는 지나친 이상일 것이며, 그에 앞서 산업 전반에 걸친 상호 신용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창업 자금 확보 방식도 눈여겨볼만하다. 작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사이트들 중에서 킥스타터[각주:8]라는 것이 있다. 사업 아이템은 있는데, 자금을 얻을 곳이 없는 이들이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설명을 글, 사진, 동영상 등으로 만들어 올리고 목표 투자 금액을 정하면, 이를 보고 마음에 들어 하는 전세계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투자 자금을 끌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2012년 한 해 동안에 2백만명 이상이 투자에 참여했고, 3억달러 이상이 모였으며 만8천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실제로 실행되었다.[각주:9]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도 있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우수한 인력들이 창업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다양한 기업들이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경쟁시켜 우수한 성적을 낸 팀들에게 지원을 해주는가 하면, 공동 창업자를 찾는 대학생들을 모아 서로 사업 계획을 설명하도록 하여 인맥을 만들어주는 사업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개별 기업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도들도 물론 좋지만, 초등 교육에서부터 적절한 사회 구조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거시적인 해결책인 필요한 시점이다.

  1. 숀 패닝, 존 패닝, 숀 파커가 1999년에 공동으로 창업한 서비스로, 처음으로 가장 널리 사용된 P2P 기반의 MP3 공유 사이트이다. [본문으로]
  2. 처음에 ‘더 페이스북’이었던 사이트 이름이 파커의 조언으로 이후에 ‘페이스북’으로 변경된다. [본문으로]
  3. 법률적 문제로 인하여 폐쇄 위기에 놓였던 ‘냅스터’는 현재 다른 기업에 인수되어 유료로 전환되었다. [본문으로]
  4. Steven Levy, In The Plex: How Google Thinks, Works, and Shapes Our Live (New York: Simon & Schuster, 2011). [본문으로]
  5. 전정홍, 「연예 ‘끼’ 넘치는데 창업 ‘끼’는 없다」, 『MK 뉴스』, 2013. [본문으로]
  6. 위의 기사. [본문으로]
  7. 위의 기사. [본문으로]
  8. www.kickstarter.com [본문으로]
  9. http://www.kickstarter.com/year/201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