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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긴 글

대한민국 모바일 게임의 현재와 그 그림자

대한민국 이동통신 시장은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스마트폰 보급 속도를 자랑하였다.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에 갤럭시S를 출시한 것이 2010년 6월임을 생각해보면, 2년 반 만에 거의 전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관련된 여러 산업 분야에 변화가 일었는데, 그들 중에서 게임 산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과거의 피처폰 시절에도 휴대폰용 게임은 존재했지만, 스마트폰의 유행과 함께 전반적인 휴대폰의 사양이 한 단계 높아졌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들은 날개를 달게 되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징이, 만들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기의 성능이 충분히 좋지 않으면 해당 프로그램이 널리 쓰이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훨씬 다양한 종류의 게임들이 스마트폰용으로 등장하였고, 소비자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초등학생이나 중고생들이 주요 소비층이었던 휴대폰용 게임 시장이 직관적인 터치 인터페이스를 동반하는 캐주얼 게임[각주:1]과 함께 이제는 주부나 할아버지까지도 소비층으로 삼는 거대한 시장이 된 것이다.


국산 게임은 아니지만 스마트폰 보급 초기 당시에 모바일 게임의 아이콘이었던 앵그리버드 시리즈나 작년 1 4분기 컴투스의 순이익을 548.9% 끌어올리는 데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타이니팜 등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던 중 2012년 8월에 한국의 대표적인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이 게임에 소셜 네트워크 기능을 접목하기 위한 플랫폼이 되기를 자처했다.[각주:2]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지금은 국내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스토어의 매출 상위 어플 목록에 카카오톡 연동 게임들이 즐비하게 되었다.


최근의 카카오톡 게임들을 필두로 한 모바일 게임 시장의 확대는 논게이머(Non-Gamer)의 확보를 기반으로 하였다. 논게이머는 단순히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게이머의 반대편에 위치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을 지닌다.[각주:3]

1. 평소 게임에 관심이 없다.

2. 게임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인지하고 사용한다.

3. 본인을 게이머로 인지하지 않는다.

4. 게임의 시작에 드는 비용을 강력한 허들로 인지한다.

5. 일단 즐기기 시작한 게임에는 쉽게 지갑을 연다.


요컨대, 논게이머들은 애니팡의 하트 보내기 기능을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의 표시로 사용하기도 하며, 게임 성적 경쟁을 친구들과의 대화 소재로 삼는다. 이는 특히 2번째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바로 이러한 특성이 논게이머를 스마트폰 게임 산업에 끌어들인 것이다. 미국에서는 애플의 플랫폼인 Game Center에 의해, 한국에서는 카카오톡에 의해, 일본에서는 LINE에 의해 게임과 소셜 커뮤니케이션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즉,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며, 이는 논게이머의 게임 참여와 함께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장에 참여하는 이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돈이 벌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논게이머는 스스로와 게이머 사이에 일종의 선을 긋는다고 하였는데(특성 3), 그들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가 게임을 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행위이다(특성 4, 5). 논게이머는 게임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게임용 콘솔을 구입하기는커녕, 게임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것 자체에도 인색하다. 하지만 그런 논게이머들에게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업계는 논게이머의 다른 특성에 주목했다. 논게이머는 게임을 하는 도중에 장애물을 마주하였을 때, 예컨대 현금을 지불하고 어려움을 제거하는 것에 거리낌이 적다. 그러나 게이머들은 다르다. 그들은 게임을 위한 진입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진입하고 나면 스스로의 힘으로 게임에서 요구하는 조건들을 달성하고자 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게임 진행 도중에 돈의 힘을 빌리는 것에 일종의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여하튼 그러한 특성을 잘 파악한 기업들은 수많은 논게이머들로부터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논게이머의 시장 유입으로 게임 산업은 이렇게 커져 갔으나, 그에 의한 부정적인 영향도 발생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게임 컨텐츠의 질적 하락이다. 골수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그래픽이나 스토리를 다듬고 향상시켜 왔던 게임 업계가 이제는 논게이머만으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그들의 눈에 맞는 적당한 게임만을 만들면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는 표절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스마트폰이 나오지도 않았던 시절부터 존재했던 게임을 재구성한 것에 불과한 애니팡이 국내 게임 시상식에 후보로 선정되었을 때부터 스마트폰 게임의 표절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넷마블의 다함께 차차차는 SCE(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모두의 스트레스 팍에 나오는 미니 게임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더불어 최근 발매된 다함께 탕탕탕 역시 기존의 미국 FPS 게임[각주:4]들의 디테일을 모조리 가져다 쓴 것으로 질타를 받고 있다.


게임 콘텐츠의 질적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게임 관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여 여기저기에서 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말 문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다소 의문스럽다. 시장의 요구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찾아 적응하는 것이 기업의 목표이며,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기업의 과연 진정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런 대세의 흐름을 거스르며 꿋꿋하게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PC 게임을 만들던 회사들 중 몇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져 결국 다른 게임 회사에 인수되곤 하였다. 그들도 5년 전만 해도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회사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라서 캐주얼 게임이 대세가 되는 상황을 단순히 콘텐츠의 질적 하락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시장의 판도가 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예전과 같은 게임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아쉬울 수 있으나, MP3가 CD를 대체하는 상황에서도 보았듯이 품질이 좋은 것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표절 문제에 관해서는 논의를 엄밀히 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행태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유행했던 검증 받은 게임들을 표절하는 것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동시에 밑바닥부터 작업하는 것보다 개발 비용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굳이 표절 소송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어차피 논게이머들의 특정 게임에 대한 흥미는 얼마 가지 않으니 기나긴 소송이 끝나기 전에 크게 한탕 하면 된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표절은 분명한 도둑질이다. 따라서 디지털 콘텐츠 표절 문제에 대한 법률적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안의 처리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의 경우에는 게임은 잠깐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옳지 못한 행위를 한 기업의 게임을 하지 않는 등의 자발적 노력을 기울이면 좋을 것이다. 한국의 대외 주력 산업 중 하나가 게임인데, 그런 노력은 결국 건실한 게임 업체의 성장을 도울 것이고, 결과적으로 한국인들 또한 훗날 양질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게임 업체들은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 속에서 표절이라는 기회주의적 방법으로 살아남지 말고, 과거 대작 게임에 쏟아야 했던 창의력과 열정을 간단한 캐주얼 게임에 담기 위해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1.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게임 방식이 쉽거나 간편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총칭이다. [본문으로]
  2. 소셜 네트워크는 현실의 인간 관계를 가상 공간에서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하고 게임은 혼자서 즐기는 목적으로 사용하던 것을 하나로 합쳐서 현실의 지인과 함께 게임 경험을 공유하기 쉽도록 한 것이다. [본문으로]
  3. http://www.sodrock.com/2013/01/none-gamer.html [본문으로]
  4. First-Person Shooting Game, 직역하면 1인칭 슈팅 게임이며, 게이머가 총을 들거나 전투기에 탑승하여 싸우는 상황을 가정하여 그의 시각으로 구성된 화면을 보며 이루어지는 게임 장르이다. [본문으로]